“파라모포시스(Paramorphosis): 변형으로 태어나는 것들”
‘파라모포시스(Paramorphosis)’는 요즘 현대 철학에서 주목받고 있는 탈인간중심주의적 신유물론, 그 깊은 흐름 위에 뿌리를 둔다.
이 세계관에서 물질은 더 이상 인간의 손에 의해 일방적으로 가공되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다.
스스로 변화하고, 스스로 자라나는 살아있는 능동적 행위자로 새롭게 이해된다.
“Paramorphosis: Things Born of Transformation”
‘Paramorphosis’ is rooted in the deep current of posthumanist new materialism, a concept currently gaining significant attention in contemporary philosophy. Within this worldview, matter is no longer viewed as a passive entity unilaterally shaped by human hands. Instead, it is reimagined as an active, living agent that changes and grows on its own.
PARAMORPHOSIS
파라모포시스: 변형으로 태어나는 것들
‘파라모포시스(Paramorphosis)’는 요즘 현대 철학에서 주목받고 있는 탈인간중심주의적 신유물론, 그 깊은 흐름 위에 뿌리를 둔다. 이 세계관에서 물질은 더 이상 인간의 손에 의해 일방적으로 가공되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다. 스스로 변화하고, 스스로 자라나는 살아있는 능동적 행위자로 새롭게 이해된다. 이런 시선의 바탕에는 두 예술가에 대한 연구가 짙게 배어 있다. 하나는 도시의 틈새에서 제 힘으로 뿌리 내리는 자연물을 작업의 주인공으로 삼았던 오스트리아 작가 로이스 바인베르거(Lois Weinberger)다. 그는 인간의 통제를 살며시 벗어나는 자연물들을 통해,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수평적인 관계를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실천해 보였다. 또 하나는 유기적 형태와 인공적 질감 사이의 경계를 흐리며 독자적인 조형 세계를 일궈온 마틴 슈벵크(Martin Schwenk) 교수다. 그의 예술적 지도 아래, 이은우는 자신만의 변형적 조형 언어를 한층 깊고 정교하게 가다듬을 수 있었다. 이 둘의 작업은 그의 예술 세계에서 핵심적인 참조점이 된다. 이은우의 조각들은 언뜻 보면 식물의 줄기 형상이나 생명체의 표면을 떠올리게 한다. 유기적인 선과 덩어리가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듯하지만, 그와 동시에 인위적인 직선과 이질적인 물성이 과감하게 공존한다. 표면은 때로는 반들반들하고 매혹적인 광택으로 마감되다가도, 어느 순간 거칠고 날것의 질감으로 돌변하며 묘한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원본이 무엇이었인지 짐작조차 어려운 이 형태들은 내부에서 무언가가 팽창하듯 부풀어 오르며, 중력을 거스르듯 위로 뻗어 나간다. 자연의 법칙을 따르는 것 같으면서도, 물질 스스로가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어 가는 것 같은 힘이 거기에 있다. 이 작업이 기대고 있는 또 다른 사유의 축은 제인 베넷과 브루노 라투르(Bruno Latour)로 이어지는 철학적 계보다. 인간과 비인간을 동등한 존재로 바라보는 이 시각은, 인간이 지구 환경에 가하는 인위적 행위와 그로 인한 물질의 뒤틀린 변형마저도, 지구 생태계라는 거대한 그물망 안에서 함께 얽혀 일어나는 하나의 현상으로 끌어안는다. 결국 이은우의 작업은 이런 질문을 조심스럽게 건네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인간의 인위적인 행위도 결국 거대한 자연의 역사 안에 놓인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 인위적인 행위를 통해서도 공존은 가능한 걸까? 가상의 실재를 통해 자연을 소비해온 인간 중심적 시선을 조용히 해체하면서, 우리 자신의 모순을 거울처럼 마주하게 만드는 여정. 그것이 이 작업이 열어두고 있는 길이다. [1] 로이스 바인베르거 (Lois Weinberger, 1947–2020) 오스트리아 출신의 자연주의 개념미술가로, 카셀 도큐멘타 10(1997)과 베네치아 비엔날레(2009) 등 세계적인 미술 행사에 참여하며 국제적인 명성을 쌓았다. 서구 정원 문화가 품고 있는 인간 중심적 통제에 의문을 던지며, 도시의 아스팔트 틈새나 소외된 공간에서 스스로 자라나는 잡초를 작업의 중심에 놓았다. 인간이 그어 놓은 경계를 넘어 제 힘으로 뻗어 나가는 비인간 존재의 주체성을 시각화함으로써, 현대 환경 미술과 신유물론적 사유에 깊은 영향을 남겼다. [2] 마틴 슈벵크 (Martin Schwenk, 1960~) 독일 뒤셀도르프 출신의 조각가이자 교수. 뒤셀도르프 미술아카데미에서 수학한 뒤, 독일을 비롯한 유럽 각지의 미술관에서 개인전과 기획전을 이어오며 현대 조각의 영역을 넓혀왔다. 식물의 줄기나 세포, 광물의 결정 같은 유기적 자연의 구조를 에폭시 수지, 실리콘, PVC 같은 인공 재료와 결합하는 작업으로 잘 알려져 있다. 표면의 섬세한 가공과 질감의 변주를 통해, 익숙한 자연의 형태를 낯설고 환상적인 입체물로 탈바꿈시키는 조형 언어를 구축했다. [3] 브루노 라투르 (Bruno Latour, 1947–2022) 프랑스를 대표하는 철학자이자 인류학자, 사회학자.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의 경계를 가로질러 사유한 그는, 후기에 이르러 기후변화와 인류세 시대의 지구 정치학 및 미학적 담론을 이끌었다. 인간과 비인간이 동등하게 상호작용하며 네트워크를 이룬다는 ‘행위자-네트워크 이론(ANT)’을 통해, 인간 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지구 생태계 안 모든 존재의 평등한 존재론을 이야기하는 오늘날 미술 담론에서 가장 자주 불려오는 사상가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