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f und Ab에 대하여 (2022)

김아영 (큐레이터)

귀국 후 갖는 첫 개인전인 본 전시에서 이은우 작가는 “입체와 평면의 차이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하여 장르에 대한 일체의 규정을 거부하는 작품들을 선보인다. 한편으로, 작가의 오랜 관심 주제였던 ‘역사가 드러나는 개념’, ‘겉과 속에 감춰진 요소’를 드러냄으로써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규범(standard)에 대한 인식을 비튼다.

색의 중첩에 의해 생겨난 형태가 돋보이는 <Einklang (동음)>과 <Abendrot (노을)>은 부조에서와 같은 깎음으로써 줄어들어가는 과정에 기반한 조형언어가 작업의 바탕이 되었다. 여러 색의 물감을 쌓아 굳힌 후 조각도로 갈아내는 행위가 반복되는, 재료와 시간의 축적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 그의 작품은 정교하고 섬세한 표면이 주는 긴장감으로 가득하다. 여기서 색 층들의 순차적인 의미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그것의 표면을 깎아내는 조각적 행위가 자아내는 평면 회화에서의 돌연한 낯설음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대상에 접근하는 작가의 집요함은 퇴적에 의해 감춰진 작품의 본질을 드러내는 파괴성으로 치환되며 화면을 이루는 색과 이미지는 가변 상태에 놓인다. 작가는 재료와 제작방식 사이의 이격을 유도하는 그의 독특한 조형 언어를 통해 “입체와 평면의 차이는 무엇인가”를 성찰한다.

<Julia Sammer (율리아 잠머)>(2015)와 <Untitle (무제)>(2016)는 인쇄된 사진의 표면을 화학제품으로 지워내며 픽셀을 무너뜨려 회화로의 변용을 시도한 것이다. 디지털 인화된 사진 이미지는 작가에 의해 용매와 사포 등으로 지워지거나 깎인 후 물감과 잉크로 재작업되었다. 사진으로 고착된 시간의 편린은 작가의 행위가 남긴 흔적들로 회화성을 입게 되었다. 추상/구상 사이에서 흔들리는 작가의 터치는 이미지를 구축하다가도 이내 흩어지며, 본래의 상(像)의 잔상은 그가 ‘본 것’을 끊임없이 환기시킨다.

영상작품 <Verbrannt serie 2 (타버리다 연작2)>(2017)은 보도블록 틈에서 버티듯 살아남아 흔들리던 하나의 꽃이 결국 불에 타 소멸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점차 거세지는 바람에 의해 흔들리던 꽃은 마르고 불에 타 재로 남는다. 작가는 “인위적인 공간에서 자연물이 발견될 때”와 같이 무심하게 제시되는 비정상적인 상황에 주목한다. 이질적 합체가 생성해내는 분위기는 작가에게는 보이지 않던 요소들의 부각과 경계를 모호하게 하는 등 예술이 가능케 하는 신선한 시각적 표현과 발견에 다름 아니다. 이는 다른 한편으로 과거 그가 속한 세계에서 동떨어져 낯선 곳에 놓였던 이방인으로서의 작가 본인에 대한 은유이기도 하다.

강원작가트리엔날레2022에서도 소개되었던 영상작품 <산은 많고 들은 적으며, 사람들의 성품은 부드럽고 삼간다>(2022)는 낱낱의 이미지로 이루어진 강원도 평창 진부의 산길 풍경을 보여준다. 픽셀화된 이미지가 설치된 가벽은 진부의 전시장 건물 뒤에 남아있던 화재로 철거된 건물의 잔해 앞에 설치되었다. 작가는 유럽에서 십년 이상을 체류하며 방문했던 스위스, 프랑스 등의 산으로 둘러싸인 지역들에서 자신의 고향인 강원도의 지형과의 유사성을 발견하고 예전에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익숙한 곳의 소중함을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전한다. 그리고 이것이 본 작품의 출발점이 되었다. 영상에 등장하는 진부의 할아버지와 소녀는 서로를 도와 진부의 산속 풍경 이미지를 해체하고 이를 재조립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작품의 주요 소재인 동시에 무언의 발언자인 이 두 인물은 작품을 제작하기 위한 사전지역조사과정에서 작가가 접했던 두 편의 보고서(『강원도 인구구조 실태와 대응』(2017, 강원연구원), 『인구구조변화 대응실태I』(2021, 감사원)) 속 통계로 전하는 점차 줄어들어가는 진부지역의 노년층과 유소년층을 대변한다. 작가에게 이들은 무관심과 방임 속에 사라져가는 소중한 그 무엇에 대한 상징이기도 하다. 이들에 의해 재구성된 이미지는 처음과는 완전히 다른 이미지로 관객들에게 제시된다. 작품 속에 흐르는 음악은 영상의 후반부에서 거꾸로 재생되며 이미지가 해체되고 재조립되는 과정에 보조를 맞춘다. 작가에게 음악은 영상의 시간성을 느끼게 하는 표현장치인 동시에 관객들을 사유로 이끄는 매개체로 의도된 것이다. 작품명인 “산이 많고 들은 적으며, 사람들의 성품은 부드럽고 삼간다”는 조선 후기 실학자 이중환이 집필한 『택리지(澤⾥志)』(1751)에서 강원도에 대해 기술한 문구를 따온 것으로, 이를 통해 사람이 살기에 좋은 지리적 요건을 갖춘 곳을 서술한 실학자의 인식은 작가가 소망하는 강원도와 궤를 같이 하고 있음을 보인다. 오늘날 변화라는 명목하에 강원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목도하며 작가는 ‘우리에게 역사란 무엇일까? 무엇을 후대에게 전해 주어야 할까? 그리고 후대에게 무엇을 전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작품 속 픽셀화된 풍경 이미지는 마치 조립 가능한 자연이라는 인식을 상기시킨다. 이를 해체하고 재조립하는 할아버지와 소녀의 행위는 결국에는 무엇을 후대에게 전달해야 하는가 하는 작가의 질문을 끊임없이 반복하고 있다고 하겠다.

본 개인전은 평면 회화에서 ‘평면 조각’으로 변화되어 나아가는 이은우 작가의 작업의 역사성과 작가적 정체성에 대한 탐구를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형식적인 측면에서 예술가로서 기존의 작품들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움을 추구하고, 이 목적에 부합한다면 특정 장르에 얽매이지 않겠다는 것이 작가의 변(辯)이다. 장르를 나누는 기준과 그들 간의 경계를 의문시하는 것 역시 작업의 대상이 된다. 인위적 경계(boundary), 기준(standard), 자연(Nature)에 대한 작가의 관심이 반영된 작품들과 아이러니한 지점에 주목을 통해 작가적 영감과 예술로 표현한 사회적 발언, 개인적 삶의 일부를 아우르며 그의 예술의 본질을 들여다보는 계기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