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통의 감성적 표면 위에서 탐사하기

한의정 (미학, 충북대학교 교수)

다양한 매체를 오가며 실험하는 이은우 작가가 2024년 《Positive, ,Negative》展에서 선보이는 작품은 크게 두 종류의 평면 작업으로 나뉜다. 하나는 모델링 재료를 섞은 아크릴 물감으로 색색깔의 층들(layers)을 쌓아 올린 후, 다시 기계와 작가의 손으로 일일이 깎고 파내려가면서 자유로운 형상과 레이어 아래의 색들을 드러내는 색-추상 작업이다. 다른 하나는 디지털 인화된 풍경과 인물 사진 위에 용해제를 뿌려 사진의 입자(pigment)를 녹여 번지게 하여 상(像, image)을 흐릿하게 만드는 구상에 가까운 작업이다. 일견 쌓고 깎기 vs. 녹이기, 추상 vs. 구상, 회화 vs. 사진, 드러내기 vs. 지우기 등 전혀 다른 종류와 스타일로 보이는 두 작업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질문을 던져 본다.

공통의 감성적(aesthetic) 표면
일단 두 작업 모두 평면을 기반으로 하는 작업이다. 그렇다고 조소를 전공하고 입체, 설치, 미디어 작업을 주로 선보인 작가가 평면으로 회귀했다거나 평면도 잘 다룸을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작가는 쌓고 깎는 작업을 일종의 부조(relief), 즉 평면 상에 모델링하는 작업으로 보고 “사진으로 조각하기”와 같은 표현을 종종 쓰는 등, 평면도 입체로 파악하는 습관이 체득되어 있는 듯했다. 요즘 같은 다매체 시대에 조소 작가가 평면 작업을 선보이는 것이 어색하거나 신기한 일은 아니지만, 필자는 이은우 작가와 대화를 나누면서 이은우 작가의 주된 탐구의 영역이 ‘표면(surface)’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표면이란 미술비평가 클레멘트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가 말한 평평한 캔버스 표면과 같은 뜻이 아니다. 오히려 프랑스의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Jacques Rancière)가 말한 “기호, 형태, 행위가 동등해지는 어떤 공통의 감성적인 표면”이라는 의미에 가깝다. 랑시에르는 이 공통의 감성적 표면의 출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시는 더는 회화를 모방하지 않으며, 회화는 더는 시를 모방하지 않는다. 이것은 한편에는 말이 있고 다른 한편에는 형태들이 있다는 뜻이 아니다. (…) 즉 말의 예술과 형태들의 예술, 시간의 예술들과 공간의 예술들을 분리하면서 각각의 예술의 장소와 수단을 나누었던 원칙이 폐지되었다는 것, 분리된 모방의 영역들을 대신해 공통의 표면이 구성되었다는 것을 뜻한다.”(자크 랑시에르, 『이미지의 운명』, 김상운 옮김, 현실문화연구, 2014, 190쪽)

전환(conversion)의 표면
이은우는 굳이 회화, 사진, 조각으로 나눌 수 없는, 아니 나눌 필요가 없는 공통의 감성적 표면에서 작업한다. 이 공통의 표면에는 회화, 사진, 조각의 기법들을 모두 적용할 수 있고, 우리가 보고 있다고 여기는 ‘시각요소들(visual elements)’과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들(형상들)’이 서로 침투하고 뒤섞이는 장소이다. 그래서 이 표면에서는 기존의 역할과 기능이 뒤바뀌는 일이 흔하다. 예를 들어 표면색(surface color)은 일반적으로 사물의 표면에서 빛이 반사되어 우리 눈에 인식되는 색인데, 이은우의 작품에서는 사물의 깊숙한 곳에 표면을 투과한 다양한 색들의 층들이 존재함을 드러내는 기능을 한다(<대지>(2021), <노을>(2021), <파랑>(2021), <아인 클랑_하모니>(2021) 등). 멀리서 보면 화면의 표면색이 노을의 색으로 지각되지만, 고고학 유적을 탐사하듯 지층을 파내려가면 각각의 층들에 묻혀있던 형상과 색들이 모습을 나타낸다. 또한, 지우기 기법도 기존과 다른 기능을 한다. 게르하르트 리히터(Gerhardt Richter)가 자신의 사진회화에 블러(blur) 효과를 줌으로써 그 이미지가 가진 외상적 실재(the traumatic Real)를 지우고 숨기려 했다면, 이은우 사진의 용해 기법은 오히려 카메라가 담아내지 못한 대상의 실재나 실제 경험의 사실적 인상을 담아내기 위함이다(<로마식 개선문이 있는 풍경>(2015), <크리스티나 베르거>(2016), <울타리와 꽃>(2017), <정원>(2020) 등). 이와 같이 이은우 작업이 기반하고 있는 공통의 감성적 표면에는 실재/가상, 형상/배경, 과거/현재 중 그 어느 것도 절대적 우위를 차지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모든 기능들의 전환과 이동이 자율적으로 일어난다.

공존(coexistence)의 표면
이은우의 입체와 미디어 작업에서도 표면의 탐구는 지속적으로 관찰된다. 파인애플의 표면을 폴리우레탄 폼으로 다양하게 본떠서 하나의 기둥으로 만들어 낸 <무제>(2018)나 카메라와 삼각대, 그리고 여타 사물들이 시멘트 표면으로 뒤덮여 하나의 덩어리 오브제가 되어버린 <당신은 버튼을 누른다>(2017)는 그 어느 것에도 스며들 수 있고 어떤 것도 감싸안을 수 있는 유동적인 표면의 실험이다. 세대 간의 경계, 감시와 소통, 개인과 사회, 자연과 인공의 만남을 주로 다루는 이은우의 미디어 프로젝트 작업 또한 서로 다른 개체와 존재가 예술이라는 ‘공통장(commons)’에서 공존할 수 있도록 하는 작업들로 보인다(<한쪽으로>(2015), <타버리다 II>(2017), <프로젝트 시놉티콘>(2020), <산은 많고 들은 적으며, 사람들의 성품은 부드럽고 삼간다>(2022) 등).

조우(encounter)의 표면
또한 이은우가 시도하는 공존의 표면은 새로운 만남이 이루어지는 표면이기도 하다. 작가는 여러 기법과 재료를 가지고 형식(form)을 실험하는 과정 중에 본인이 의도하지 않은 형상(Form)을 만난다고 밝혔다. 물감의 레이어 층을 빠르게 깎아내는 CNC머신과, 기계의 날을 만들고 기계의 작동 방향과 기계가 그릴 모양을 결정하는 작가가 공동 작업을 해나가는 어느 순간, 그 형상은 모습을 드러낸다. 이는 기계의 결과물을 일일이 사포와 같은 도구를 사용해 작가의 손으로 만지고 다듬는 과정 중 어느 순간일 수도 있다. 카메라의 눈이 자동적으로 담은 형상과 색을 작가가 용해제를 사용해 적절히 녹이는 중에도, 또는 용해 과정 위에 다시 사포, 붓, 손으로 문질러 지워나가는 과정 중에도, 매번 예기치 않은 만남이 형성된다. 이 형상과의 조우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만나는 자리이며, 은폐되어 있던 것들이 표면을 뚫고 유령처럼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다. 작가에게도, 그리고 이은우의 작품을 바라보는 관객에게도 그 순간들은 예기치 못한 경험(l’inattendu)이기에 우리 일상과 구별되는 미학적(aesthetic) 경험인 것이다. 이 경험들을 각자 쌓아놓을 수 있도록, 그리고 시간이 지나 언제든 다시 열어볼 수 있도록 이은우는 이번 전시에서 쉼표 사이 공간을 넉넉히 비워놓았다.